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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왕산

by firtree 2023. 9. 13.

주왕의 전설이 살아 숨 쉬는 주왕산



주왕산의 전설

 

 

 


주왕산은 가는 곳마다 전설이 살아 숨 쉬는 산이다. 주왕산의 이름은 원래 산자락이 돌 병풍을 두른 것 같다 하여 석병산이었다가 피난민이나 선사들이 자주 찾아들어 대둔산이라고도 했으며, 뛰어난 절경 때문에 소금강이라고도 불렸다. 중국 진나라 때 벼슬을 지냈던 주의의 9대손 주도는 자신을 후주 천황이라 칭하며 나라를 일으켜 당나라 수도 장안으로 쳐들어갔으나 대패하고 말았다, 이후 주왕은 병사들과 함께 요동으로 쫓겨 갔다가 다시 신라 땅으로 도망 와 산세가 험한 이곳 주왕산에 은거했다. 이를 알게 된 당나라 덕종이 신라에 주왕 일파의 토벌을 요청하자 신라 소성왕은 마일 성 장군의 5형제에 주왕을 공격하라고 명했다. 결국 이 싸움에서 애절하게 생을 마감한 주왕은 이 산 곳곳에 수많은 사연과 관련 지명으로 남아 그 한스러운 삶을 전하고 있다. 그리고 태종무열왕의 6대손이자 신라 선덕여왕의 조카인 김주원이 머물렀다고 하여 주방 산이라고도 했으며, 후에 중국 주나라의 왕이 피난했던 곳이라 하여 지금의 주왕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주왕산의 경치

 

 


주왕산의 사장으로 청송을 대표하는 기암, 그 모습이 '산(山)'자와 비슷한 기암은 원래 하나의 얌체였으나 커다란 6개의 수직 주상절리를 따라 오랫동안 침식과 풍화를 받아 7개의 바위 봉우리로 분리되었다.

주왕산은 백두대간의 산줄기가 태백산맥을 타고 내려오며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을 끌어안고 남쪽으로 이어지는 남한의 중동부에 자리 잡은 명산이다.

해발고도 720m로 국내의 이름난 다른 산들에 비해 매우 낮지만, 웅장한 산세와 죽순처럼 솟은 수많은 기암절벽으로 일찍이 조선 팔경 가운데 제6경으로 꼽힐 만큼 뛰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에서는 "골이 모두 돌로 되어 있어 마음과 눈을 놀라게 하며 셈과 폭포가 절경"이라고 극찬했다.

주소아산은 경상북도 청송군과 영덕군 등 5개의 읍과 면에 걸쳐 있고, 면적이 105.4㎢로 크게 외주완 지구와 내 주왕 지구로 나뉜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은 대전사와 내원도, 기암, 학소대, 폭포 등이 있는 주 왕골계곡의 외주완 지구이지만 주산지가 있는 주산 계곡과 절골계곡의 내 주왕 지구 또한 그에 버금가는 경치를 자랑한다. 특히 몇 해 전 주산지가 한 영화의 촬영지로 소개되면서 찾는 이가 부쩍 늘었다. 

일반적으로 산은 주봉을 중심으로 내려갈수록 산세가 여럿으로 분리되어 능사는 이 만들어지고 그 사이로 계곡이 내려앉은 피라미드형이다. 그러나 주왕산은 그 생김새가 확연히 다르다, 가운데 부분이 둥글게 튀어나와 배흘림기둥과 같은 기암들이 정상을 시작으로 가메봉, 왕거암, 명동재, 머위 등, 두수람, 금은광이, 장군봉까지 말굽형으로 이어지는 능선 곳곳에 나타나는데, 그 모습이 마치 빙 둘러서서 강강술래를 하는 듯하다. 

주왕산이 크게 주목받는 이유는 각양각색의 기암 봉우리와 절벽이 자연의 신비와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설악산처럼 높지도 않은 이곳에 어떻게 이런 거대한 바위 봉우리들이 넘쳐나게 된 것일까?




 


주왕산의 기암 덩어리들



주왕산의 기암 덩어리들은 화산 분출의 산물이다.

주왕산의 생김새가 복잡한 만큼 주왕산은 언제 어떻게 만들어 졌겠느냐는 의문이 머릿속에 자리 잡는다.

청송 일대의 지질 구조에서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확신한다.

이 청송지역 일대는 선캄브리아대에 석회암을 포함한 퇴적층이 바다에서 형성된 후 육화되면서 변성암류가 생겨났고 중생대 쥐라기에 이르러 전국적인 지각 변동과 함께 이 지층으로 관입한 대규모의 화강암(청송 화강암)이 기반암을 이루며 폭넓게 분포하게 되었다.

이후 백악기 약 1학년 전에 대대적으로 일어났던 지각 변동으로 일부의 지각은 융기하여 고지대가 되고, 일부의 지각은 함몰하여 저지대가 되었다. 저지대를 따라 강물이 흘러들어 대규모의 호수가 전국 곳곳에 생겨났는데 주왕산 일대 또한 경상도 전역에 형성된 커다란 호수 가운데 하나였다. 주왕산 일대가 호수였을 당시 주변 지대에서 흘러 들어온 퇴적물이 선캄브리아대 변성암류와 중생대 청송 화강암 위를 약 600m 두께로 덮으며 두꺼운 사암 계열의 경상계 퇴적층이 만들어졌다. 이후 지반이 융기하면서 다시 육지화된 이 일대에 약 7,000만 년 전 퇴적층의 약한 틈을 뚫고 엄청난 양의 용암이 분출했다. 이 용암은 화산재의 일종인 회류 응회암으로 300℃~800℃에 이르는 고온에 점성이 무척 강할 뿐만 아니라 자체 하중 때문에 공중으로 흩어지지 못하고 지표면을 따라 흘러내려 저지대 곳곳을 메웠다. 
고온의 응회암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온도가 내려가자 시멘트 콘크리트처럼 단단한 암석으로 변했다.

이렇게 응결, 수축하는 과정에서 체적이 줄고 암석이 갈라져 암석 표면에 기둥 모양의 주상절리가 발생했다. 이 절리면 따라 수분이 침투하여 침식과 풍화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 암석이 수직으로 떨어져 나가며 붕괴하였다. 주왕산에서 볼 수 있는 기암, 망월대, 학소대, 급수대, 촛대봉, 시루봉 등과 같은 다양한 바위 봉우리와 기암절벽은 모두 이와 같은 과정으로 만들어졌다. 


 



주왕산의 용암분출

 

 


주왕산에서 화산 폭발에 의한 화산재와 용암의 분출이 단 한 차례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곳 주왕산 일대에서 처음 분출한 용암은 대전사 부근에서 발견되는 약 60m 두께의 현무암이다. 이대 전사 현무암 위를 덮고 있는 회류 응회암은 그 두께가 350m에 달하여 상당히 많은 양의 응회암이 연차적으로 분출했음을 알 수 있다.

주왕산 일대의 지질을 연구해 온 안동대학교 지구환경과학과 황상 구 교수(화산학)에 따르면, 주왕산 계곡부에서 왕거암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대전사 현무암, 주왕산 응회암, 너 구동 층, 무포산 응회암 등 4개의 암 층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 가운데 주왕산 응회암에서 9개 이상의 흐름 켜가 나타난다고 하니 적어도 아홉차례 이상 용암이 반복적으로 분출했다고 확신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시기에 다른 성분으로 퇴적된 화산재와 용암이 굳은 주왕산 응회암은 켜마다 내부와 표면의 결정 속도가 달라 침식의 정도도 각기 다르다. 층과 층이 만나는 경계는 풍화에 약해 치맥이 먼저 진행되기 때문에 평탄한 면이 수십 개 드러난다. 반면 켜 안에서는 주상절리면 따라 수직 균열이 발생하여 응회암제들이 떨어져 나가고 계단식 지형이 만들어진다. 협곡을 이루는 주왕산 제1, 제2, 제3폭포는 바로 이렇게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