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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읍 내장산, 조선왕조실록을 지킨 이야기.

by firtree 2023. 9. 10.

1. 정읍 내장산

 


가을 단풍으로 유명한 내장산은 호남 5대 명산의 하나이다. 전국 8경의 하나이고 또한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리는 곳이다. 금선폭포, 도덕폭포 등 머리뼈의 폭포와 금선계곡, 원적계곡, 신선봉, 서래봉, 불출 봉, 연지봉, 망해봉, 까치봉, 여자 봉, 장군봉, 월 영봉 등 아홉개의 우람한 봉우리로 이루어졌고 굴거리나무, 비자나무 등 희귀식물이 자생하고 있다. 1971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봄의 신록, 여름의 녹음,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이 아름다워 사시사철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며 특히 단풍이 절경을 이루는 가을에는 많은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최고봉인 신선봉(763m)을 주봉으로 서래봉, 연지봉, 연장 봉, 장군봉 등이 내장사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내장사, 원적암, 도덕암 등 크고 작은 사찰이 있다.



2. 내장산의 역사 이야기

 

 


이 산속으로 피난을 갔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쳐들어오자 태조의 영정과 실록을 전주에서 내장산으로 옮기고 1년 동안 숨겨 놓았다. 조선왕조실록 피난길은 등산로 탐방안내소에서 출발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단풍이 수놓은 내장산 절경을 보며 전망대까지 올라간다. 전망대 누각을 지나 천연기념물인 굴거리나무 군락지를 지나며 추운 겨울에도 푸른 굴거리나무가 숲을 이룬다. 내장사의 모습이 드러난다. 금선계곡 하류에는 깊은 용궁로 가는 길이 있다. 그곳에 을 숨겨 놓았다. 손홍록과 안 의가 잘 진행하였으리라 생각한다.

태조부터 명종까지의 실록을 보관하고 있었던 전 전주 사고는 전쟁이 터지고 왕조실록이 그대로 그곳에 있었다면 왜군이 모두 불살랐을 것이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기록유산이다. 손홍록과 안의 두 선생 덕분에 유실되지 않고 잘 보존되었다. 은 마차로 60대 분량이었는데 이 골짜기까지 어떻게 옮겨 놓았는지 놀랍다.

이곳에 옮겨 둔 후 손홍록과 안 의는 물론이고 내장사의 희묵스님, 손홍록의 식솔, 내장산의 심마니들, 무사 김흥수, 내장산의 심마니들, 사당패까지 1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실록을 호위했다고 한다.

원적암 남쪽 산기슭에는 750년을 자랑하는 비자나무숲이 태고(太古)의 신비를 간직한 채 자라고 있다. 내장산의 자랑은 단풍이다. 내장산의 단풍잎은 잎이 작아서 단풍이 잘 들며 빛깔이 곱고 아름답다. 산골짜기와 바위 벼랑을 붉게 물들이는 단풍잎은 바로 자연의 영롱한 시요, 화려한 자연의 축제이다. 찬 서리가 내리면 단풍잎은 더욱 붉어진다. 다른 나무는 낙엽이 되어 시들어 가는데 오히려 단풍잎들은 더욱 진한 빛깔을 내뿜는다. 내장산의 단풍잎은 가장 곱고 아름다운 가을의 꽃이다. 

 


3. 정읍 가볼 만한 곳

 


월영습지

월영습지는 낮은 산 정상부 분지에 형성된 ‘저층형 산지 내륙습지’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과거 농경지로 사용했던 폐경지가 약 50여년간 방치되면서 자연 천이를 통해 습지로 복원되고 있는 곳으로, 숲속에 습지 공간이 있어 평지와 산지의 특성을 모두 지닌 특별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월영습지는 2014년에 환경부에서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고 크게 4곳의 습지로 구성되어 깃대종인 비단벌레, 진노랑상사화와 같은 멸종위기종과 다양한 자생식물이 자생하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이루고 있다.

솔 티 숲
내장산국립공원과 인접한 솔 티 숲은 인간을 품은 자연과 자연이 깃든 인간의 아름다운 공생을 경험할 수 있는 곳으로 반세기 동안 국립공원과 상수원 보호 지역으로 지정돼 생태 보물로 가득한 지역이다.
천년의 숲을 이어오면서 끝내 마을을 떠나지 않고 숲과 마을을 지켜온 선조들의 내리사랑을 느낄 수 있다.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무성서원
세계 유산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무성 성원은 ‘한국의 서원’은 한국의 성리학 문화 전통의 탁월한 증거이자 성리학 개념이 한국의 여건에 맞추어 지역화되는 역사적 과정을 서원의 기능과 건축적 배치 등에서 잘 보여주는 유산이라고 확신한다.

무성서원은 신라말(886년) 우리 고장 태산 태수로 부임하여 8년간 선정을 베푼 고운 최치원 선생을 기리기 위해 행사당을 세운 데서 유래했다.
서원은 1615년 건립하여 태산 서원이라 했는데 1696년(숙종 22) 무성서원이라 사액 되었다. 무성서원은 예(禮)와 악(樂)으로 백성을 교화한 선비문화의 중심으로 그 가치를 높게 평가받고 있는데, 자연경관 속에 입지한 다른 서원과는 다르게 마을 속에 위치하여 주민들이 민주적으로 서원의 보존과 운영에 참여해 왔다는데 특징을 보인다.
무성서원은 19세기 말 정부의 서원철폐령에도 훼철되지 아니한 전라북도 내 유일한 서원으로 고운 최치원 선생, 「상춘곡」을 지은 불우헌 정극인 선생 등 이 지역에서 성리학을 보급하고 학문을 장려한 7분을 배향하고 있다.


세계 유산적 가치
‘한국의 서원’은 한국의 성리학 문화 전통의 탁월한 증거이자 성리학 개념이 한국의 여건에 맞추어 지역화되는 역사적 과정을 서원의 기능과 건축적 배치 등에서 잘 보여주는 유산이다.